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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2022년 4월 3일 주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후” (행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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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께 더 가까이(14):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후” (행5장)
“After the accident of Ananias and Sapphira”
본문: 사도행전 5:1~42
요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 5:5)
주제: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하던 중 일어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일어남
교독문: 128번(사순절 5), 예배의 부름: 벧전 4:7-8
찬송: 150장(통 135장), 144장(통 144장), 191장(통 427장)
일자: 2022년 4월 3일 주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지난 한 주간 사순절을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다음 주일(4월 10일)이면 종려주일(Palm Lord’s Day)인 동시에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에 회개와 금욕과 성결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사도행전 5장을 강해합니다. 4장 마지막 부분에 보니 초대교회는 성신님의 역사로 하루에 3000명, 5000명 단위로 크게 부흥하는 동시에 성도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니 성도들이 큰 은혜를 얻어그 중에 가난하거나 배고픈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부동산)들은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그중에 구브로(Cyprus) 출신으로 레위지파 출신으로 요셉은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전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본을 보여 사도들이 그에게 별명(nickname)을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권면자, 권사)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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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3)베드로가 말하기를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신님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soul)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8)베드로가 말하기를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예, 이뿐입니다“(9)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10)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곁에 장사하니(11)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6절. 밭과 집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드려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게 하였던 그때에(행 4:34-3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고 그 아내도 알았습니다. 그는 일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신님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였습니다. 아나니아(Ananias)와 삽비라(Sapphira)의 일차적 문제는 탐심과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헌금을 하긴 해야 하겠는데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다 드리기가 아까웠던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기와 물질적 욕심이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구브로 태생 요셉이가 모든 소유를 주님께 바쳐 사도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을 보고 시기 났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들의 전 소유를 헌금 드리자니 탐심이 앞서게 되어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맞먹는 죄악입니다(골 3:5).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도 탐심을 금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탐심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마음입니다. 아나니아는 탐심 때문에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의 속에는 물질의 신인 맘몬이 지배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사도 베드로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고 성신님을 속인 것입니다. 거짓은 곧 마귀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성도들의 모임 속에 이런 거짓은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거짓을 용납한다면, 교회는 급속히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7-11절. 아나니아가 죽어 장사된 것을 모르고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 삽비라가 사도들 앞으로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삽비라도 거짓말 합니다. “예, 이뿐입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그러자 그녀는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갔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였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도직의 권위를 세워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꾀하여 사도들 속에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복종하였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는 사도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욕심이나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도직의 권위의 문제이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까닭은 사도들이 선포하고 가르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가운데 일어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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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signs)과 기사(wonders)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13)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14)믿고 주님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couches)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16)예루살렘 근읍 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12-16절. 사도들의 손으로 사람들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행해졌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porch)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durst)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백성들이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믿고 주님께로 나오는 자들이 더 많았으니 남녀의 큰 회중들이 모여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소파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 마을의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들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손으로 많은 기적들이 행해지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들은 그들의 권위를 확증하고 그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들이 진리임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신님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여기에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권위의 근거도 있습니다.

 

행 5:1~16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물질적 욕심을 버립시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에게 매우 큰 시험거리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거짓을 버립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요 지옥 갈 죄악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큰 악입니다. 거짓을 용납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셋째로, 교인들은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바른 교훈과 치리를 존중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권위가 굳게 세워지고 그들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견고히 확립되게 하시기 위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치셔서 죽이셨습니다. 그것은 너무 두려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사도직은 존중되어야 하고 교회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사도들을 속이는 일은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사도직의 권위는 목양의 권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5-17). 목양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씀의 권위입니다. 그가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은 권위 있게 전달되고 받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권위가 무시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무시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의 전한 교훈이 바로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사도들의 목양의 직분이 그 후에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신님께서 그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행 20:28).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와 장로들, 곧 당회의 권위와 그들의 바른 교훈과 치리는 교인들에 의하여 존중되어야 하합니다. 살전 5:12-13, “주님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교회는 성경적 교훈과 치리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목회자나 당회에 대한 비난은 매우 신중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교인에게 가장 큰 불행은 목양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교훈이나 당회의 치리에 대해 어떤 이의(異議)가 있는 자는 사사로이 불평하여 다른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지 말고 합법적으로 그 문제를 당회에 제기하고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신천지의 추수꾼들은 기성 교회 침투하여 이 목양 관계를 어지럽힙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목양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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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8)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19)주님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말하기를(20)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니(21)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22)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23)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24)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25)사람이 와서 고하기를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26)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27)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묻기를(28)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예수님]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9)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31)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32)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께서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신님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7-21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공회원들의 시기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르는 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거나 핍박을 받는 것은 복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핍박받는 자에게 큰 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주님의 사자(angel 천사)는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인도하여 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늘 함께하셨고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식으로 이들을 위험에서 구출하셨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가서 부지런히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전해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어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이미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공회원들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그것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확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사도들을 능욕하며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모였던 것입니다.

22-26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감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고 보고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자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은 이 말을 듣고 의심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라고 고합니다.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도우신다는 것을 알리시며 느끼게 하신 것입니다. 성전 맡은 자는 관속들과 같이 가서 사도들을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사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그들에게 호감을 가졌습니다.

27-28절. 그들이 사도들을 다시 체포하여 공회 앞에 세우자, 대제사장은 따집니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敎)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에 가득히 퍼지고 있음을 우려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예수님의 핏값이 자신들에게 돌려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뜻은 힘있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29절. 공회 앞에 다시 선 베드로와 사도들은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We ought to obey God rather than men.” 몇일 전 공회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말한대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19)과 같은 맥락의 웅변입니다.이것은 지당하게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나 주장에 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 즉 바른 교리와 교훈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성경 강해와 성경 공부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교리를 주장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무엇을 반박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반박해야 합니다. 성경의 건전한 해석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은 권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0-31절. 베드로는 담대히 선언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분을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들은 공회 앞에서의 발언의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들이 증거한 주제는 십자가, 부활, 승천, 예수님께서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심, 회개, 죄사함 등입니다. 이것들은 복음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분께서 우리의 임금과 구주이심이 확증되셨습니다. 또 우리는 회개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요지입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주 되심과 회개와 죄사함을 전파해야 합니다.

32절. 베드로는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신님도 그러하니라”고 증언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친히 보고 들은 자들입니다(행 1:21-22). 하나님의 복음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되었습니다. 이것은 후시대의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근거는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신님께서도 복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성신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을 행하심으로 복음을 확증하셨습니다. 히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신님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오늘날 성신님께서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경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경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신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행 5:17~32의 본문에서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로, 우리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시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과 명예심을 버리고 남을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높여주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은 아직도 교만과 명예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기의 영광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진리의 교훈대로 행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의 삶을 각오합시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를 지시는 길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간 길도 고난의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바른 삶의 여정은 평안과 영광의 길이라기보다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며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이 문제를 더욱 묵상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된 말씀이며 성신님께서도 많은 기적들로 확증하셨고 지금도 온 세상에 선포되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회개케 하는 말씀이며 회개하며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전도자를 위협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다가 생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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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하니(34)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35)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36)이전에 드다(Theudas)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37)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39)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40)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33절. 유대의 공회원들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그들은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또 죽이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악한 일을 계속 행할 수 있겠는가요? 사도들이 무슨 죽을 잘못을 범했는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한 것이 왜 죽을 죄가 되는가요?

34-39절. 공회원 중에 가장 존경받던 가말리엘(Gamaliel)이라는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당시에 자유주의자들인 사두개인과 달랐습니다. 가말리엘은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교수며 박사였습니다. 교수는 율법학자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 교수 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가말리엘은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라고 명한 후에 말했습니다. 예전에 드다가 400명을 거느리고 소요를 일으켰지만 그가 죽임을 당한 후 다 흩어진 것과 갈릴리 유다가 소요를 일으켰지만 망한 후 추종하던 사람들이 다 해산된 실례를 들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가말리엘의 충고는 정당한 충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살벌한 공회 가운데서도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 선생을 사용하셔서 사도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 가운데서 무엇이나 자유로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허락하심이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을 것입니다.

40절.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았습니다. 그들이 가말리엘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로써 죽음의 위험을 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말리엘 자신은 복음에 대해 무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공회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채찍질하였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41-42절.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전도하지 말라는 유대 지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인간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자에게는 때때로 감옥에 갇힘이 있고 매맞음이 있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도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것을 각오해야 하며 오히려 그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한 고난이며 하늘에 큰 상급이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됩시다. 전도는 무슨 이유로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하여금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거짓과 탐욕의 노예로 살지 말고 진리와 헌신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이 사순절 기간에 복음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게 하시며 하늘의 상급이 쌓여감을 깨닫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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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부활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금주기도제목: (1) 부활의 달에 영원한 말씀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속히 코로나 재앙이 물러가게 하시며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 소망, 사랑이 부요롭게 하소서!

4월4일(월) 찬 64장(통 13장), 143장(통 132) 단5장(벨사살왕의 죄, 죽음)

5일(화) 찬 64장(통 13장), 143장(통 132) 단6장(사자굴 속의 다니엘)

6일(수) 찬 67장(통 31장), 146장(통 146) 단7장(네 짐승 환상)

7일(목) 찬 67장(통 31장), 146장(통 146) 단8장(숫양과 숫염소 환상)

8일(금) 찬 73장(통 73장), 149장(통 147) 단9장(다니엘의 구국 기도)

9일(토) 찬 73장(통 73장), 149장(통 147) 단10장(힛데겔 강가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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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봄학기 수업(내일) 일정: 4월 4일 월.

1. 10:00-11:00 성경신학(윤사무엘), 2. 11:00-12:00 특강 “진짜 시내산”(김승학 교수), 점심시간 3. 1:30-2:40 한국신학(유석근), 4. 2:50-4:00 테필린(김인자), 5. 4:10-5:00 무궁신학(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9113-1127, 010-4907-7483. 010-7307-3589

◉ 겟세마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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