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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담임)  

2022년 10월 9일 주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요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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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께 더 가까이(4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요3장)
                 “Being born of the water and of the Spirit”
본문: 요한복음 3:1-36
요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주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무궁한 생명을 누리자.
교독문: 75번(마6장), 예배의 부름: 딤전 4:7~9
찬송: 615장(통 없음), 228장(통 281장), 197장(통 178장)
일자: 2022년 10월 9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열여덟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6호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0:30]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은 우주를 표현하는 표음문자로 20년전에 세계의 알파벳이 되었습니다. 1882년부터 훈민정음으로 성경이 번역이 되어 출판됨으로 그 진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430년 동안 훈민정음은 언문(諺文), 반절(半切), 언서(諺書), 암클, 아햇글 등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cism)으로 인해 천대받았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존 로스, 존 맥킨타이어, 허버트, 언더우드, 아펜젤러, 게일, 레이놀즈 등)이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알고 성경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이후 훈민정음은 문화어가 되었고(그 이전에는 어느 종교 문헌이나 공문에 훈민정음을 사용하지 않음) 그 진가가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어와 훈민정음이 매우 영적인 언어이며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문자임을 유네스코가 인정하여 <훈민정음 해례본 訓民正音 解例本>이 1997년 10월 1일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음 28글자와 모음 10자가 우주적 원리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뉴욕 맨하탄 42가에 위치한 UN빌딩안에 있는 유네스코에 세종대왕 동상도 있고, 우수한 알파벳이나 문자에게 주는 세종상을 수상하고 있습니다. 2001년 유네스코에서 김석연 교수(뉴욕 주립대 언어학)가 정리한 누리글이 세계 공통 언어 표기(Universal Character Set)로 채택되었습니다. 이제는 세계에서 훈민정음은 세계공식언어로 채택되어 사용중입니다. 훈민정음(1908년 주시경일 이를 한글이라 칭함)은 IT 문자라 할만큼 셀폰의 문자메시지, 컴퓨터의 인터넷 언어로 그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대지大地 The Good Earth, 1931년]의 작가이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선교사인 펄벅(Pearl S. Buck, 1892-1973)은 훈민정음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로 문자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습니다. 또 미국의 과학전문자 [Discovery]지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 학자는 훈민정음이 독창력있고 기호 배합의 효율면에서 가장 우수한 합리적인 문자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합니다.(조선일보 1994년 5월 25일자).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훈민정음이 최우수 언어로 선정하였는데, 세계 모든 문자의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제 일제 강점기 때에 우리말의 세계언어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4개 글자(ㆆ 여린히읗, 된이응, h), ㆁ(옛이응, 꼭지이응, ng), ㅿ(반시옷, z), .(아래 아)를 빼버렸는데 이제 이 4글자를 복원하여 28자 훈민정음을 보존하고 활용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요한복음 3장을 강해합니다. 3장은 주 예수님께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바리새인)라는 사람에게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거듭남의 필요성, 거듭남의 방법, 그리고 거듭남의 증거에 대해 말씀하신 후 요한복음의 요절이며 복음의 요약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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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Nicodemus)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4) 니고데모가 말하시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9) 니고데모가 대답하기를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5)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생(eternal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절. 니고데모(Nicodemus, ‘백성의 정복자’라는 뜻)는 바리새인이며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공의회)의 회원이며 부자였습니다(요 19:39). 예수님 당시 유다에는 약 6,000명의 바리새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경건하여 기도와 구제에 힘쓰며, 천사의 존재와 부활을 믿었고, 구약의 오경 뿐만 아니라 역사서, 시문서, 예언서를 하나님의 말씀의 정경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편 당시에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지며 세속 정치에 참여한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이었습니다. ‘지도자’(아르콘 ἄρχων)란 말은 공회원같이 유대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지도적 인물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이 있는 자이었습니다.
2절.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합니다. 모든 일과가 마치고 랍비가 저녁식사를 겸한 토론을 하는 시간을 키두쉬(Kiddush)라고 합니다. 그는 이 시간에 주님을 방문하여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님이신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표적들 τὰ σημεῖα]을 아무라도 할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마치 경건한 사람들을 대변하듯이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님' 곧 대언자[선지자]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였고 그 근거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 곧 기적들을 들었습니다.
3절.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부족함을 아시고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선 거듭남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신분이 있고 존경을 받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거듭남(being born again)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남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5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었습니다(창 3:24). 그러므로 사람이 죄인인 채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전 6:9-10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고, 요계 22:15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고 합니다. 그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입니다.
4-5절. 니고데모가 의아하며 말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육신적 의미가 아니고 영적 의미이며 영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물은 죄씻음을 말합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씻습니다. 세례 의식의 물은 그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 15:3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다”고 하셨고, 엡 5:26에서 “주님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또 히 10:22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사람의 심령에 적용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6:11에서 “신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며, 딛 3:5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6-8절. 주님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Ye must be born again.) 하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부니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거듭남은 육신적 의미가 아니고 사람의 영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출생은 육적인 일입니다. 영이 그 속에 있으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의와 선을 행치 못하였습니다. 영과 혼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있으므로 그 기능인 지식과 감정과 의지(知情意)는 매우 어두워졌고 약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다시 살아나고 혼의 영역인 지정의의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은 바람과 같습니다. '영'이라는 원어(프뉴마 τὸ πνεῦμα)는 '바람, 숨, 입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로부터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남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볼 수는 없으나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은 볼 수 없으나,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성령을 볼 수 없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참된 회개와 믿음의 고백과 변화된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9-12절. 니고데모가 대답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거듭남은 비록 신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땅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땅의 일' 즉 땅에서 일어나고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거듭남은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입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모든 사람은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한 자신의 말이 진리임을 강조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님의 하나님의 세 구별된 인격을 말합니다. 
13-15절. 예수님께서는 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통본문(킹제임스역)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人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절은 예수님의 신인(神人) 양성을 증거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말은 그분께서 본래 하늘에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요 1:1의 증거대로 '태초부터 계신 분' 곧 무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인자(人子)'는 그분께서 땅에 내려오신 후에도 여전히 '하늘에 있는 인자'(KJV) 즉 신성(神性)으로 항상 하늘에 계심을 나타내든지, 아니면 단순히 '하늘에 계셨던 인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지금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씀은, 비록 에녹(창 5:24; 히 11:5)과 엘리야(왕하 2:11)가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고 모든 의로운 성도들의 영들(히 12:22-23)이 그러하지만, 천국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의 구원 계획을 이해한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하십니다. 민 21장에 보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호르산을 거처 에돔 땅을 둘러 행할 때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셨고 많은 사람들이 그 뱀들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죄를 뉘우쳤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셨고 불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봄으로써 죽지 않고 살게 하셨습니다.
이 불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豫表)하였습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실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 몇 번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특히 요 12:32-33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신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장대에 단 놋뱀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15절에서 주님께서는 “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전통본문)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목적은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는 영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죽을 자가 되었고 그곳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천국에 다시 들어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죄인들이 거듭나서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아 천국에서 복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것이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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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7)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18) 그분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16절. 15절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이유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 즉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16절은 복음의 핵심이요 요약입니다. '세상'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6:39에서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 있고 그들만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 13:48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서 영생을 주시기로 선택하신 자들의 수효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요계 7:9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섰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증거하므로(요 1:1; 요일 5:20),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는 무궁적입니다. 또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성경의 기본적 진리에 근거하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의 본질적 일체와 수적인 하나 되심의 신비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주셨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뜻합니다. 성육신(成肉身)입니다. 무궁하신 아들께서 사람의 영과 육체를 취하여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주셨다'는 말은 또 아버지께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내어주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20:28). 그분의 죽음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신 목적은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로 인해 멸망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죄인들의 마지막 상태는 지옥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무궁한 생명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믿음으로 얻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라.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롬 3:20).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사 64: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엡 2:8-9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가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과 이끄심이 없이는 내가 믿을 수 없습니다. 요 6:44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고, 또 요 10:26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롬 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했고, 또 요일 4:9-10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십니다.
17-18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심판하다'는 원어(크리노)는 '정죄(定罪)하다'는 뜻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롬 8:1).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정죄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19-21절.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입니라.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입니다. 그 정죄는 빛이 세상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빛으로 나오지 않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적이나 간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는 낮의 빛을 두려워하며 밤의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빛으로 나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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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침례]를 주시더라(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26)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분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분께서 세례를 주니 사람이 다 그분에게로 가더이다”(27) 요한이 대답하기를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28)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분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30)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1)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분은 만물 위에 계시나니(32)그분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33)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34) 하나님의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36) 아들을 믿는 자는 무궁한 생명(everlasting life)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22-24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유대 땅으로 가셨고 거기에 머무시며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주셨습니다. 요 4:2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주었습니다. 세례는 구약의 결례(潔禮) 즉 정결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구약의 결례는 물로 씻거나 피를 뿌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율법에는 나병환자가 병이 나으면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그에게 일곱 번 뿌리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레 14:7-8). 이런 규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물을 뿌리거나 물로 씻는 의식들을 장로들의 유전으로 가지고 있었고(막 7:3-4) 거기에서 세례 의식이 있습니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행 2:38; 22:16).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상징적 의식들 중에 단지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남기셨습니다. 그것들은 주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바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죄씻음이라는 복음 진리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과 멸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례[침례자]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애논은 요단강 상류 쪽인데 거기에 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갈릴리에서 전도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마 4:12-13; 막 1:14).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지금까지의 내용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의 일들이며 공관복음에서 생략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25-27절.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는데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불평스럽게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 편에 있던 분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분이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그것은 분명히 아직 30세 가량밖에 안 된 젊은 사역자 요한에게 인간적으로 위축될 만한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을 극복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요한은 대답합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는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지혜와 은혜와 능력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임을 분명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28-29절.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분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라고 합니다. 그는 메시야를 소개하는 자에 불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와 신분과 사명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자이심을 이미 증거했고 또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는 자, 즉 그 곁에서 그를 섬길 자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세례 요한은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신랑에, 자신을 그 친구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는 신부를 취하는 자가 신랑이지만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신랑 친구들이 크게 기뻐하듯이 자신이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귀한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젊은 사역자로서의 인간적인 쓸쓸함이나 우울함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불필요한 인간적 연약성이 없었고 또 경쟁심이나 시기심 같은 추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30-31절. 세례 요한은 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실 때이며 자신은 사명을 다했으므로 쇠해지고 사라져야 할 자임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직분자와 봉사자에게 본이 됩니다. 직분자는 자신의 위치와 직무를 바로 알고 그것을 지키고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하며 또 다른 이의 위치와 직무를 바로 알아 그를 격려하며 그의 일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무시하지 말고 그에게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시기와 교만, 미움과 다툼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세례 요한은 또 말하기를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분은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는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시는 분,' '하늘로서 오시는 분'이라고 증거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과 본질을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과 본질은 땅이나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 1:34에서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례 요한이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도 요한의 증거대로, 육신 곧 인간의 몸과 영을 취하여 오신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 1:1, 14).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십니다(31절). 그것은 그가 그 근원과 본질, 권위와 영광에 있어서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심을 의미합니다. 신적 인격이신 예수님과 대조하여 땅에서 난 이, 즉 모든 사람은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대언자들이나 세례 요한 자신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 근원과 본질이 다르고, 따라서 그 권위와 영광이 다릅니다.
32-33절. 세례 요한은 또 말했습니다.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그가 보시고 들으신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하신 내용은 다 진실하고 확실하며 믿을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증거하신 내용을 받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어둡고 부패한 세상의 현실입니다. 세상은 가장 진실하고 확실하고 믿을 만한 말씀을 의심하며 불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거하신 말씀을 받는 자는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증거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34-36절. 하나님의 보내신 분, 즉 땅에서 나오지 않고 땅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로서 나오시고 하나님께 속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실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십니다(골 2:9, 요 1:14, 16).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구약의 대언자들도, 신약의 사도들도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전했습니다.
35절에서 세례 요한은 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다고 합니다. 36절에서 세례 요한은 또 아들을 믿는 자는 무궁한 생명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합니다. 그는 영생을 얻는 유일한 조건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에게서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서 제거되지 않고 그 사람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독생자로 주신 예수님을 믿어 무궁한 생명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지 않으면 멸망받으니 우리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 모두 전도하여 천국으로 인도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님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모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나라에 훈민정음을 주시고 세계인들이 훈민정음을 사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훈민정음으로 번역된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보급하며 자기 문자가 없는 인종들에게 누리글을 보급함으로 그들의 언어로 삼아 성경이 출판되게 하옵소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받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온 인류의 심장에 새기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공동 질문들]
1.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이며, 왜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나?
2.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나?
3.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조건이 무엇인가?
4.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바람에 비교하라(3가지 특징)
5. 모세의 지팡이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교하라
6.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것을 요약하라
7. 무궁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을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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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말씀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금주기도제목:
(1) 기도의 달에 나라 사랑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 소망, 사랑이 부요롭게 하소서!
10월10일(월) 찬 93장(통93), 563장(통411) 요3장(니고데모와의 대화)
    11일(화) 찬 93장(통93), 563장(통411) 요4장(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12일(수) 찬 92장(통97), 564장(통299) 요5장(38년된 병자 고치심)
    13일(목) 찬 92장(통97), 564장(통299) 요6장(오병이어의 기적)
    14일(금) 찬 91장(통91), 565장(통300) 요7장(영생수 마셔라)
    15일(토) 찬 91장(통91), 565장(통300) 요8장(간음녀 용서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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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가을학기 개강
  개강 2022년 8월 29일 월 오전 10시-오후 5시 반
  종강 2022년 11월 28일 월 오후 5시
◉내일(10월 10일):
1교시(10:00-11:30) 심볼리즘(류재이), 기도회(11:40-12:00),점심(12:10-13:00), 2교시(13:00-14:30) 복음신학(송인성), 3교시(14:40-16:00) 성경종말론(유석근), 4교시(16:10-17:00) 학/석사반 신약성경(오선화), 박사반 목회신학(이성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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