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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2023년 5월 7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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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18):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 10장)
                       “The Good Samaritan Parable” (Lk 10)
본문: 누가복음 10:1-42
요절: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7)
주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최선을 다해 강도 당한 자를 치유하며 돌보자
교독문: 98번(어버이주일), 예배의 부름: 시편 127:1-3
찬송: 570장(통 453장), 563장 (411장), 579장(통 304장)
일자: 2023년 5월 7일 주일 (부활절 후 다섯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지하철: 인천1호선 국제업무역, 출구 5번, 좌측 7분 거리 빌딩)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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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어버이 주일로, 5월 21일은 가정의 달로, 5월 28일 주일은 성령(성신)강림주일로 지킵니다. 가정의 달에 성신충만 받도록 기도에 전혀 힘쓰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누가복음 10장을 강해하겠습니다. 칠십인을 전도보내시고 보고받으시며, 천국비유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 70인 전도자들을 보내심 Jesus Sends Out the Seventy-Two(눅10:1-24)


(1) 이후에 주님께서 다른 칠십 명을 세우사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마을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2) 이르시되 “진실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3) 너희 길로 갈지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돈주머니나 짐 보따리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도시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3)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20) 그러나 마귀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21) 이때에 예수님께서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23)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은밀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대언자]와 왕이 너희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
1-2절. 이후에 주님께서는 12사도들 외에 70인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도시, 각 동네로 둘씩 앞서 보내셨습니다. 전도자들을 둘씩 보내신 것은 그들이 전하는 바를 확증하고 서로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주님은 전도를 추수에 비유하셨습니다. 씨는 이미 뿌려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선지자[대언자]들에 의해 뿌려졌습니다. 씨가 심겨지고 자라서 추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 즉 구원얻을 혼들이 많으나 일꾼이 적으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 즉 전도자들을 많이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하는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천국 백성의 씨를 뿌리게 하셨고 그것을 자라게 하셨고 또 그것을 추수하게 하십니다. 오늘날은 세상의 종말이 더 가까우므로, 전도자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서양 선교사들처럼, 우리도 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3-12절.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주님께서 전도자들의 위험과 고난을 암시하시면서 그들의 임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전도자들은 전도지로 가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의 세계를 떠나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전도자들은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마 28:19; 막 16:15).


둘째로, 전도자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전도자들은 어린양이 이리 가운데 보내짐같이 이 거칠고 악한 세상으로 보내집니다. 세상에는 이리 같은 악한 자들과 핍박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며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로, 전도자들은 물질적 염려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주머니나 짐 보따리나 신’ 등은 생활 문제에 대한 염려 즉 물질적 염려를 의미합니다. 그런 염려는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시고 보내시는 주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넷째로, 전도자들은 오직 자기 임무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다른 일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자기에게 부여된 전도만 생각하고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다섯째로, 전도자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안을 기원해야 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기원할지라도, 하나님의 평안은 평안을 받을 만한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여섯째로, 전도자들은 한 집에 유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그 집에 유숙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전도자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자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자청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는 초월하는 태도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일곱째로, 전도자들은 어떤 동네에 가든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환우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자들이 전해야 할 주제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주제이며 성경의 대주제입니다. 죄인들의 현재의 구원의 문제이며 구원받은 자들의 장래의 영광, 곧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광스런 영생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전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영접할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거절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도자들이 전한 복음을 거절한 자들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때, 복음을 거절한 자들은 자신들이 행한 악에 대해 벌을 받을 것입니다.
13-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기적 체험과 믿음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심판의 날에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하십니다. 많은 가버나움 사람들도 천국에 갈 것같이 생각했으나,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16절.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업신여기는 자는 곧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요 나를 업신여기는 자는 나 보내신 분을 업신여기는 것이라.” 전도자들의 말을 듣는 자는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요, 그들을 업신여기는 자는 곧 주님을 업신여기는 자이며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17-18절. 70인이 기뻐 돌아와 선교보고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영접했던 것 같고 심지어 마귀들도 그들에게 복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탄은 그때까지 하늘에서 활동하고 있었는지 땅으로 떨어진 것을 보셨습니다. 사탄은 의로운 욥을 비난했었습니다. 욥1-2장). 그는 선지자[대언자] 미가야 때에 거짓 선지자[대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었습니다(왕상 22장). 하늘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사탄과 그 사자들이 하늘에서 내어쫓겼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탄과 악령들을 파하고 지옥갈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죄인들은 전도를 통해 회개하고 주 예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다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19-20절.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주었으니’라는 말은 전통본문에는 ‘주노니’라고 현재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권세가 현재 효력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뱀들과 전갈들을 밟으며 원수들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는 사탄과 악령들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에서 장차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며 이제 사탄과 악령들을 제압할 능력을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주십니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는 말씀은 그들의 구원과 영생의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일은 마귀들을 굴복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쁘고 복된 일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21절. 이때에 예수님께서 영안에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받고 나아가 전도하며 혼들을 구원한 사실을 영안에서 기뻐하십니다. 구원은 우리 모두의 기쁨의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자이시며 주관하시는 자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은 그분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그 근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지식을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13세 바미쯔바(성인식)할 나이 이전의 아이들을 말합니다. 세상에 지혜로운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을 더 잘 또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 당시 유대의 나이 든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이려 했지만, 어린아이들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며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구원의 지식을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얻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지혜 있는 자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혜 있는 자도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2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주님께서는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를 증거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분이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에게 계시될 때는 부자 관계로 설명하시는데 이것은 그분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방법만 제시하고 구원의 결정권을 사람에게 맡겨두신 것이라면, 그분을 구주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구주이십니다.
23-24절. 예수님께서는 또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은밀히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대언자]와 왕이 너희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보고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고 그분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대언자]들과 경건한 왕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대하던 그분께서 오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 역사의 가장 절정적 사건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이며 영광의 천국에 들어감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복 중의 복, 곧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였듯이,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분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2. 이웃 사랑과 경건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눅 10:25-42)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그분을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eternal life)을 얻으리이까?(26)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7)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28)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30)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니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33)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35)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부탁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세요.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7) 대답하기를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니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더니(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괴로워 하더라.예수님께 나아가 말씀하시기를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즉 그녀에게 명령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1)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5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사람 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마음입니다(전 3:11).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깊이 통감할수록 더욱 영생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은 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26-27절.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는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 율법사는 율법의 내용을 두 가지로 잘 요약하였습니다. 그 두 가지 내용은 신명기 6:5와 레위기 19:18에 나와 있고, 과연 그 두 가지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율법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결국 그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됩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요약입니다.
28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요? 그는 율법을 행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본심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영생을 얻지 못함을 밝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한 하나님이시며 그분에게는 사상적, 교훈적 일치가 있으십니다. 사람이 율법을 다 행하면 그것이 그에게 의(義)와 생명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한 기본 진리입니다(신 5:32-33). 그러나 문제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죄악됨을 깨닫습니다(롬 3:20). 인간은 본성이 심히 부패된 존재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렘 17:9). 그러므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은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게 하시는 뜻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자 할 때 자신의 죄악됨과 무능력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습니다(롬 4:15).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율법 안에 성막 제도와 예배 제도를 주셨습니다. 그 제도는 죄인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속죄사역으로 죄씻음 받을 것을 암시하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와 영생을 얻습니다.
29-32절. 예수님께 영생의 방법을 질문했던 그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아마도 이 사람은 자신처럼 구제를 많이하고 선행을 베풀었기에 “너처럼 살아가는 이가 이웃이니라”는 칭찬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대답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던 마을이며 예루살렘은 해발 850미터나 되지만 여리고는 해면보다 250미터나 낮은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험한 길이었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거의 죽은 상태로 버리고 갔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강도 만나 죽게 된 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마 자기도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워서 혹은 자기 일이 바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그를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한 레위인도 우연히 그곳에 이르러 그 강도 만난 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그를 피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이었지만 그 죽게 된 자를 돌보고 살려주려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33-35절.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반쯤 이방인으로 여겨서 상종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유대인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그 강도 만난 유대인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사랑은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꺼내어 그의 상처에 부었습니다. 그것은 그 상처를 소독하고 부드럽게 하는 응급조치의 방법입니다. 그는 그의 상처를 싸매고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또 그는 이튿날 노동자의 이틀 품삯이나 되는 데나리온 둘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그를 돌보아 주기를 요청하였고 비용이 더 들면 그가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어려움 당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했고 그를 위하여 자기 시간과 수고와 물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36-37절.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그 율법사에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그의 질문은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 율법사는 그에게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했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주님께서 “네 이웃은 강도 만난 자이니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그 사마리아인이라고 율법사는 대답하였고 주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히 선행을 교훈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선행을 교훈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언급되는 그 강도 만난 자는 바로 우리 자신 곧 온 인류이며, 그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혹은 마귀들린 자라고 비난하고 배척하였습니다(요 8:48). 그러나 그는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된 인류를 위해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 이웃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우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가진 이웃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신 15:7-11).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요(잠 19:17) 의인의 삶이며(잠 21:26) 복된 삶입니다(잠 11:24-25; 28:27). 또 구제는 하늘 창고에 저축하는 일입니다(눅 12:33).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생관을 버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8-39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셨는데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인이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마르다가 살았던 마을은 베다니입니다(요 11:1). 그 집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가 살고 있었고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이 있었고 예수님과 아마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고 음식으로 대접하려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마리아가 300데나리온 가량의 값이 나가는 지극히 값비싼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는데, 그것을 보면, 그들이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려 한 것은 마르다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대접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르다는 그를 대접하려 하였습니다. 마르다에게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주님의 발 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가 예수님 앞에서 그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요 11:24), 마르다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 마리아는 언니보다 더 믿음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였고, 아마 얼마 후, 값비싼 향유를 그에게 부었습니다.
40-42절. 마르다는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식사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세상일이 다 그러하지만, 여인들이 부엌에서 음식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바쁘고 힘든 일이며 마음 쓰이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스럽게 말하기를.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녀를 명하사 저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의 이런 불평스런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실상,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봉사의 일이 결코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런 외적 봉사의 일을 선한 것으로 장려합니다(롬 12:13). 그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는 구절은 전통본문에는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크게 여기신 그 한 가지 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일도 중요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것도 주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까닭은, 첫째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요 3:16; 6:39, 40),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일차적 목적입니다(딤후 3:15).
둘째로,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기 때문입니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롬 10:17). 다른 많은 봉사의 일들은 육의 양식과 같습니다. 육의 양식은 먹어도 결국 죽는 양식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육의 양식을 먹으나 그 양식을 먹을수록 육체는 점점 늙어가고 죽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며 우리의 지식과 인격을 선하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 양식을 섭취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은 더욱 새로워지고 활기를 얻습니다. 성경은 영의 양식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우리로 온전케 하는 말씀입니다(딤후 3:16-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움으로써 점점 더 거룩하여지며 겸손해지며 선한 인격자가 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생의 길을 묻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으셨고, 그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주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오늘의 기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버이 주일에 주시는 이 귀한 말씀이 저희 가정에 복음이 되게 하시사 모든 가족원들이 영생을 얻게 하옵소서. 말씀의 부모가 되게 하시며, 신앙의 부모님을 본받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효자, 효녀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70인을 둘씩 둘씩 전도를 파송하시면서 부탁하신 말씀은?
2. 전도파송을 어린양을 이리에게 보내는 것과 비유하신 이유는?
3. 갈릴리 마을인 가버나움, 벳새다, 고라신이 왜 책망을 받았나?
4. 70인들이 전도 후 돌아와 보고한 내용은?
5. 강도를 만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의 문제점은?
6. 사마리아인이 강도 당한 이웃을 위한 한 행동과 실천사항은?
7.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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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가정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성신강림절을 준비하며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5월 8일 월 찬 577장(통 없음) 벧전 5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라
    9일 화 찬 578장(통 없음) 벧후 1 부르심과 택하심
   10일 수 찬 569장(통 442장) 벧후 2 거짓선지자들과 거짓선생들
   11일 목 찬 570장(통 453장) 벧후 3 하나님의 날
   12일 금 찬 574장(통 303장) 요일 1 생명의 말씀
   13일 토 찬 575장(통 302장) 요일 2 대언자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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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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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9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5월 8일 월 수업 일정표
   1교시 10:00-11:30 채플(강사: 이종락목사, 베이비박스 대표)
   점심과 체조, 친교 시간 (11:40-1:00)
   2교시 (1:00-2:30) 복음신학(송인성), 종말론(유석근)
   3교시 (2:50-4:20) 무궁신학(이종훈), 테필린(김인자),
   4교시 (4:30-5:20) 원어강독(이종현)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1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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