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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2023년 5월 21일 주일 )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눅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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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20)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눅12장)
              “Beware y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Lk12)
본문: 누가복음 12:1-59
요절: “그동안에 사람들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주의하라’” (눅 12:1)
주제: 진정한 경건이란 위선을 벗어나 진실하며 언행일치의 믿음을 말한다
교독문: 135번(성신강림1), 예배의 부름: 요엘 2:28-32
찬송: 185장(통 179장), 184장 (173장), 189장(통 181장)
일자: 2023년 5월 21일 주일 (부활절 후 일곱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 교회 담임) 
      인천광역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IBS Tower, 11층 11호
      (지하철: 인천1호선 국제업무역, 출구 5번, 좌측 7분 거리 빌딩)
  [예배시간: 매일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오후 1:30]
 
다음 주일은 오순절(五旬節, Πεντηκοστή, Pentecost)로 하나님께서 성신(Holy Ghost)으로 강림한 날을 기념합니다. 50일째 맞이하는 날이란, 예수님의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신의 모습으로 강림하심으로 제2의 성육신 사건이 된 것입니다. 원래는 유대인들이 처음 수확한 농산물을 바치는 날을 말한 것인데, 유월절과 무교절 후에 오는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칠칠절이 변역되어(레 23:15-22, 민 28:26-31) 오순절로 정착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Shavuot)로도 기념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 이후부터는 오순절이라는 명칭으로 기념되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창립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올해 칠칠절에도 세계와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황우여장로님께서 한국대표로 참석하십니다. 이번 주간 열심히 기도에 힘써서 올해 오순절에도 성신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누가복음 12장을 묵상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조심하라고 하시며,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할 것을 당부하시고, 어리석은 부자를 실례로 드시면서 모든 소유권이 주님께 있음을 부탁하십니다. 


1.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Have No Fear But God (눅 12:1-12)
(1) 그동안에 사람들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주의하라.(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밝은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신님(Holy Ghost)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12) 마땅히 할 말을 성신님(Holy Ghost)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1절. 그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선(hypocrisy 히파크러시)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깨끗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미움과 음란으로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위선은 일종의 거짓과 속임입니다. 위선은 ‘누룩’과 같이 조용히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그래서 교회를 형식적이게 만들고 생명력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선과 형식주의를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2-3절. 주님께서는 다른 경우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배운 진리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으시나(마 10:26-27), 여기서는 바리새인들의 감추인 악들이 다 드러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십니다. 감추인 악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들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은밀한 탐심과 미움과 음란 등은 다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은밀한 것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추인 악들을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은밀하게 남을 비난하여 형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고 충고할 것이 있으면 대면하여 충고하는 것이 옳습니다.
4-5절. 몸의 죽음으로 사람의 생명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혼은 불멸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몸의 죽음 이후에도 존재합니다. 단지 그것이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는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몸의 죽음 후의 혼의 상태는 심판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더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인 후 그를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17-18에 보면,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하십니다. 지옥은 불못입니다. 지옥 교리는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가복음 9:43-49,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의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은 데나리온(당시 노동자의 일당에 해당하는 돈) 은전의 16분의 1의 값이 나가는 동전(요즘 돈으로 4000원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참새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기도 하고 또 잡혀 죽기도 합니다. 인간은 참새보다 귀합니다. 사람은 그 머리털까지도 하나님 앞에 다 세신 바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아시고 잊지 않으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핍박이나 불안한 장래의 일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8-9절.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분을 안다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마음속으로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10:9-10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합니다.
10절.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그분의 인성(人性)에 가리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단순히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알고 거역한다면 그는 사하심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이 때때로 드러나고 그분의 하신 일이 명백히 성신님으로 된 것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신님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은 성신님을 모독하는 죄 곧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을 보고도 그것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매우 완악한 자이며 구원의 가망이 없는 자일 것입니다.
11-12절. 초대 교회 시대는 예수님 믿는 일 때문에 핍박을 받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 시대와 같았고 공산 치하의 때와 같습니다. 믿는 이들은 유대교 회당들에서도 심문과 핍박을 받고 세상 권세자들 앞에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일을 예견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또 무엇을 변명하며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신님께서 그때에 마땅히 할 말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문들을 통해 유대의 무지한 종교지도자들에게나 세상의 위정자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증거되게 하실 것입니다.


2. 탐심을 물리치라 The Parable of the Rich Fool(눅 12:13-21)
(13)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15)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든 탐욕을 조심하고 주의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니(17)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9) 또 내가 내 혼에게 이르되 ‘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나(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3-14절. 그의 형이 부모의 유산을 다 가지려 했던 것 같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부모의 유산은 비록 장자가 동생보다 두 배를 얻지만(신 21:17) 동생도 나누어 가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동생은 부모의 유산의 3분의 1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은 그 유산을 다 가지려 한 것 같으니, 그것은 잘못이며 형의 욕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동생의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물건 나누는 자’라는 원어(메리사스쌰이 μερίσασθαi)는 ‘중재자, 조정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인간의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 형이 유산을 정당하게 분배했는지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 그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명하신 전도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대로,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명하신 전도의 일에 힘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교훈하십니다(딤후 4:2). 교회는 세속적인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 영과 혼 구원의 전도의 일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라든지 고아나 노인들이나 빈민을 구제하는 선한 일도, 교회가 직접 관여하거나 운영할 일은 아닙니다. 교회는 정당을 세운다든지 일반 학교나 병원이나 고아원이나 양노원 등을 만들어 경영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나 사회 단체들이나 그 일에 사명을 느끼는 개인들이 할 일입니다. 교회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교회를 세우는 일과 전도자들이나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15절. 형은 부모의 유산을 혼자 다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생도 탐심을 주의해야 했습니다. 그도 물질을 더 가지려는 탐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탐심을 주의해야 합니다.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탐심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탐심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10계명에서 “탐내지 말라”고 두번씩 명하십니다. 탐심은 더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돈을 크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 싹이 나오나 세상 염려와 돈에 대한 생각과 육신의 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 8:14).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하십니다(골 3:5-6). 또 그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딤전 6:9-10). 물질적 부요는 큰 시험거리입니다. 사람은 부요할 때 마음이 해이해지고 교만해지고 쾌락에 빠지기 쉽고 외도하기 쉽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경계하며 교훈하였습니다(신 8:12-14). 사도 바울은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딤전 6:6-8).
16-19절. 어리석은 부자가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혼에게 이르되 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 부자는 그가 한 곡식 추수와 얻은 풍성한 수확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비를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풍년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의 관심과 생각은 풍성한 소득과 그것을 즐기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20절.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십니다. 그 부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살면서 그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과 사람이 바르게 사는 길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요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또 자신의 건강과 생명과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에 대하여 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물질적 만족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의 영과 혼을 그날밤에 불러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을 언제든지 불러가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부르시면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그날 밤 그 영과 혼을 불러가시면, 그의 예비한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가 죽고 나면 그의 쌓아놓을 많은 곡식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며 다른 누군가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생명은 그의 소유의 넉넉함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물질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만 유익할 뿐입니다. 물질은 그의 생명을 하루라도 연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나 가야 합니다.
21절. 자기를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모을 줄은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는 자들은 바로 이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는 이 비유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굳게 믿고 깊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요셉 등 신앙의 열조들이 그러한 자들입니다. 창세기 5:21-24,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3.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눅 12:22-34)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6)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31) 오직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22-23절. 먹는 것과 입는 것은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먹는 일을 위해 쓰는 시간은 대략적으로 장보기 1시간, 음식 만들기 1시간 30분, 식사하기 1시간 30분, 설겆이 하기 1시간, 도합 약 5시간 이상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해도 1시간 이상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는 평생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합니다.
또 사람은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그런 문제로 염려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그런 것들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을까요? 그것들이 생활에 중요한 부분인 만큼, 그것들에 대한 염려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하십니다. 음식과 옷이 중요해 보이지만, 실상 목숨을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고 몸을 위해 옷을 입는 것입니다. 즉 음식과 옷은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도구와 수단에 불과합니다. 음식과 옷보다 목숨과 몸은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음식과 옷에 대한 염려 때문에 몸을 상하거나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4-26절. 까마귀는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않고 저장실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다 길러주시고 먹여주시는데 인간은 까마귀보다 더 귀합니다. 또 우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습니까? 그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습니까?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합니까? 만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더 보살피시며 섭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27-28절. 들에 피는 백합화(아네모네)를 생각하여 보아도,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나 솔로몬 왕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합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인생은 주님께서 보살펴 주십니다. 자연만물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는 인간이 자기 지혜로 만든 그 무엇보다 뛰어나십니다. 생활과 의식주에 대한 염려와 근심은 몸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목숨을 위태하게 할 뿐입니다.
29-32절. 음식과 옷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섭리자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염려하며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심을 아는 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의 피로 구속(救贖)하신 신약 성도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과 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사랑하시고, 우리의 영과 혼의 필요뿐 아니라, 우리의 몸의 필요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차 이루어질 영광의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먹고 입고 거처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31절에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통사본에서 ‘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단어가 있습니다. ‘오직’이라는 원어(πλὴν 플렌)는 강한 대조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음식과 옷의 문제를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구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땅의 일들만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는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복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과 옷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적은 양무리’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 비해 너무 적은 수의 무리입니다. 넓은 길로 가는 자들은 많고 좁은 길로 가는 자들은 적습니다. 택한 백성들은 불택자들에 비해 그 수가 적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서 위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33-34절.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그분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구제는 참 성도의 삶의 특징입니다. 구제는 천국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마 6:19-20). 우리는 재산을 땅에 축적하지 말고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 세상만 아는 자는 자신의 행복만 구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사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대로 구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탐심을 버리는 자만 주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성도는 이 명령에 복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는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4. 예비하고 있으라. You Must Be Ready(눅 12:35-48)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37)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39)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4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님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42)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46)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법률에 처하리니(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35-36절.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의 결혼식은 밤에 행해졌고 따라서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밤 늦게야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자지 말고 깨어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충성된 종들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교훈하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제(前提)하신 말씀이며 그것은 영광스러운 천국의 임함과도 관계됩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것은 충실한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신약교회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언제 오시든지 그분을 맞을 수 있도록 진실히 그분을 믿고 섬기며 따라야 합니다.
37-40절.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자들은 복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리에 앉히시고 친히 띠를 띠고 우리를 대접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그의 충성된 종들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된 약속이며 위로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저녁에 해 질 때부터 아침에 해 뜰 때까지의 밤을 일경(6-9시), 이경(9-12시), 삼경(12-새벽3시), 사경(새벽3-6시)의 넷으로 나눴습니다. ‘이경’은 대략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를 가리키고, ‘삼경’은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를 가리킵니다. 밤은 환난의 때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 직전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마 24:3-31). 결혼식에 간 주인은 날이 새기 전에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주인이 결혼식에 갔다가 한밤중에 올지라도 종들이 자지 않고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으면 복되듯이,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시간에 그분을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종들과 성도들은 복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 22:20). 그러므로 비록 그분께서 늦게 오신다고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확신하고 섬기며 따르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에 충성해야 합니다. 또 주님의 재림을 도적에 비유하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재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도적이 집주인이 알 수 없는 시간에 집에 침입하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갑자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재림을 항상 기다리며 깨어 준비하는 자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고 또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교훈의 요지는 모든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하고 항상 예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충실한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분의 약속은 참됩니다. 그러나 그 시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대로 그분께서 확실히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항상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면 됩니다.
41-42절.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비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집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지혜 있고 충성된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의 양무리들에게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깨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회자의 신앙 사상과 인격, 또 신앙 상태나 정도와 함께 갑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함께 갑니다. 목회자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런 유의 교인들이 모일 것입니다.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는 목회자에게는 그런 유의 교인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3-25, “약속하신 분은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43-44절.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 그는 항상 깨어 그분을 기다리며 맡겨진 일에 충성한 목회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들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주님께서는 그분의 충성된 종들의 충성된 사역들에 대해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세상에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45-46절.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법률에 처하리니.” ‘엄히 때린다’는 원어(디코토메세이 διχοτομήσει)는 ‘여러 조각들로 자른다, 극히 엄한 벌을 내린다’는 뜻이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법률에 처하리라’는 원어는 ‘불신자들이 받을 몫을 주리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하지 않고 오히려 교인들을 학대하거나 먹고 마시고 취했던 악한 종들은 극히 엄한 벌을 받고 불신자들과 함께 취급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엄하게 보응하실 것입니다.
47-48절. 주님의 심판은 공정할 것입니다. 악하고 불충성된 일꾼들은 그들이 가진 지식의 정도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받은 책임의 정도에 따라 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많이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자들은 잘 몰라서 행하지 못한 자들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큰 책임을 가지고도 충성치 못한 자는 작은 책임을 가진 자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직분이 크면 책임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일반 성도보다 더 나은 모범과 열심을 가지고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5. 불을 던지러 오심 Not Peace, but Division(눅 12:49-59)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50) 나는 받을 세례[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52)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54)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55)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56) 위선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경찰에게 넘겨주어 보안관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59) 네게 이르노니 한 품까지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49절. 주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습니다. 이 불이 아직 땅에 붙지 않았다고 암시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성신님]의 불을 가리키신 것 같습니다. 세례[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분은 성령[성신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하였다(마 3: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성신님]과 불로 세례[침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오순절에 성신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셨다. 사도행전 2:3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신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신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불같은 성신님께서 믿는 자들 속에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대언자]들이 예언한 바요(요엘, 이사야, 에스겔)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바이었습니다(요 14-16장; 행 1장). 다음 주일은 성신강림주일로 지킵니다.
성신님의 불은 우선 죄를 소멸하는 불입니다. 성신님께서 오신 첫 번째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구속(救贖)하신 혼들을 중생시키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죄를 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죄를 소멸시키는 불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 받는 일입니다(눅 24:47). 그 일이 성신님께서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이신 성신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고전 6:11). 성신님의 불은 또한 능력의 불입니다. 성신님 임재나 성육신 사건이나 임마누엘 사건이 모두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말씀하셨고(눅 24:49), 또 “성신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8). 이 불은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 운동의 불입니다. 영혼 구원은 성신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성신님의 불은 또한 분열의 불입니다. 이 불은 주님의 말씀의 문맥으로 볼 때 복음으로 인해 일어나게 될 분열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과 구원 운동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나누며, 이때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하나님과 악령의 싸움이 있습니다. 이 분열과 싸움은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또 이 싸움은 때때로 핍박으로 나타납니다. 성도는 영원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고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때문에 이 세상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습니다.
50절. 예수님이 받을 세례[침례]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켰습니다. 그분께서 성경 다른 곳에서 ‘세례’[침례]라는 말을 그런 뜻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38,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분의 답답하심은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그의 인간적 마음의 고통과 더불어 그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명하신 구원의 일을 이루시려는 그의 간절한 소원을 나타냅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51-53절.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주려고 오셨답니다.이사야 9:6에 평강의 왕으로 예언된 메시아이시며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마 11:28) 주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고 분쟁을 주려 왔다”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분쟁’이라는 원어(헤 디아메리스모스 ἢ διαμερισμόs)는 ‘분열, 나누임’을 뜻합니다. 그것은 진리와 비진리, 믿음과 불신앙, 구원과 멸망의 분열과 나누임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 의와 불의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면 세상은 항상 그 진리를 따르는 자와 그 진리를 거부하는 자로 나뉠 것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넓은 길로 가는 자들은 많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는 자들은 적을 것입니다(마 7:1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막 16:16). 그것이 복음의 성격입니다. 복음은 분열을 가져옵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둘로 나눕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로 나누는 것입니다. 복음은 심지어 집안 식구들을 둘로 나누며 신앙 문제로 서로 갈등하게 만듭니다. 그 나뉨과 갈등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52절과 53절에 ‘분쟁하리라’는 원어(디아메리스데세타이διαμεμερισμένοι)는 ‘나뉘리라, 분열하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우리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러므로 시편 73편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님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님 밖에 나의 사모할 분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마태복음 10:34-39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사회의 복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십니다(막 16:15).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의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웃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자기의 권세 아래 있는 죄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도들의 생애가 그러했듯이, 전도 사역에는 이방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미움과 핍박이 예상됩니다. 전도와 구원 운동은 영적 전쟁입니다. 거기에는 갈등과 분열이 불가피합니다. 진리와 비진리 간에는 타협과 일치가 불가능합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나뉘며 최종적으로도 나뉠 것입니다.
54-56절.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위선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분변하다’는 원어(도키마제인 δοκιμάζειν)는 ‘시험하다, 분별하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날씨와 기후를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치 못한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메시아로 오셨고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함을 가리키신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증거되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한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눅 7:22).
57절. 옳은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진리는 옳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떠나야 하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증거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옳은 것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였습니다.
58-59절.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아펠라크다이 ἀπηλλάχθαι)[놓여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官屬)에게 넘겨주어 관속(官屬)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세상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지만,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우리를 고소하는 자는 모세 곧 모세의 율법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즉 아직 우리의 목숨이 끝나기 전에, 아직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우리의 죄를 다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해야 할 것을 암시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갚기 전에는 영원한 감옥인 지옥에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에게 아직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은혜 받을 만한 때이며 아직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전해지고 있고, 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직 들려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길 가는 중에 있고 아직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신의 죄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신님의 불을 받읍시다. 그것은 중생의 불입니다. 그것은 죄를 소멸하고 씻는 성신님의 역사입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이요,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아직 중생하지 못한 자들은 성령의 불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또 성령의 불은 성령 충만함도 가리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힘입어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화의 능력입니다.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또 그것은 봉사와 전도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롬 12:6). 다음 주일 성신님의 불을 받고 성신의 충만함을 받읍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다음주일 성신 강림절을 준비하며 성신님 충만한 불을 내려주시고 강하고 급한 바람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님께서 저희 가운데 임재하시면 죄와 불법과 불결의 세상과 원수가 됨을 잘 알게 하시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도와 주옵소서. 이 시대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 말씀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임마누엘의 가정을 이루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1-3절)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방법을 서로 나누자(4-7절)
3. 성신(성령) 훼방죄란 무엇인가? (10-12절)
4.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숙지하자(13-21절)
5. 세상의 의식주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31절)
6. 신실한 종의 비유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38-48절)
7. 예수님께서 땅에 던지신 불의 결과는? (49-5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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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가정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성신강림절을 준비하며 주님의 겸손과 온유,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5월 22일 월 찬 93장(통 93장) 요계 1 일곱 교회에 임하신 하나님
    23일 화 찬 96장(통 94장) 요계 2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24일 수 찬 90장(통 98장) 요계 3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25일 목 찬 87장(통 87장) 요계 4 하늘의 왕좌와 천상의 예배
    26일 금 찬 92장(통 97장) 요계 5 어린양이 책을 취함
    27일 토 찬 94장(통 102장) 요계 6 일곱 봉인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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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us06web.zoom.us/j/7049077483?pwd=UzNvdldBM04xMFlWQSswVWxDT3YvQT09,  회의 ID: 704 907 7483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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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2023년도 봄학기 개강(2023년 2월 27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종강 2023년 5월 29일 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2023년 5월 22일 월 수업 일정표(스승의 날)
   1교시 10:00-11:40 조직신학(윤사무엘), 요한계시록(박호용)
   점심과 체조, 친교 시간 (11:40-1:00)
   2교시 (1:00-2:30) 복음신학(송인성), 종말론(유석근)
   3교시 (2:50-4:20) 무궁신학(이종훈), 테필린(김인자), 졸업논문(윤사무엘)
   4교시 (4:30-5:20) 원어강독(윤사무엘) 
◉장소: 수원 향기나는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과 디모데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네이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연락처: 010-3288-2878, 010-9367-7605, 010-9113-1127
◉로이교회 후원계좌: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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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Loi Presbyterian Church)2023/12/03.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막15장) file wgma 2023.12.02
226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Loi Presbyterian Church)2023년 11월 12일 주일 “하나님 나라를 변증하시는 예수님” (막12장) file wgma 2023.11.11
225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Loi Presbyterian Church) 2023년 11월 5일 주일 마가복음 11:1-33 file wgma 2023.11.06
224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2023년 9월 17일 주일 “예수님의 천국비유들” (막4장) file kim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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