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2024년 5월 19일 (성신강림주일) “예수님의 변증2"마태복음 23:1-39

by wgma posted May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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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2024년 5월 19일 (성신강림주일)

“예수님의 변증2"

마태복음 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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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배를 회복하는 믿음(20) “예수님의 변증2" “The Dialectic of Jesus 2” (Matt.23)

본문: 마태복음 23:1-39

요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주제: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의 실상을 공개하시는 예수님의 변증법을 배우자.

교독문: 135번(성신강림 1), 예배의 부름: 행 2:1-4

찬송: 185장(통일 179장), 187장(통 171장), 191장(통 427장)

일자: 2024년 5월 19일 (성신강림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로이교회, Roi Presbyterian Church)

[예배시간: 새벽기도(월-금) 오전6시, 주일예배 오전 11시, 정오 12:30]

[교회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323 (센트로드 빌딩 B동) 3307호, 우편번호: 22007, 지하철 인천1호 국제업무지구역 1-2번 출구, 오른쪽에 있는 연수세무서 빌딩 다음 건물(Office B)]

오늘은 그동안 기다리던 성신강림절입니다. 유월절 후 7주간이 지난 칠칠절(Week of Weeks, 7x7=49일) 즉 오순절(Pentecost, 50일째 날)로 밀(소맥)과 보리(대맥)를 추수하는 날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인도하면서 십계명을 받으러 호렙산의 시내봉우리에 올라간 날입니다. 이집트 고센땅을 출발한지 7주간이 지난 날인 오늘 모세는 호렙산을 올라갔기에 해마다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400년 이집트 생활을 청산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최고의 선물은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이 예배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8) 하신 후 열흘 만에 약속하신 성신께서 예루살렘 시온산에 위치한 마가의 연회실에 모인 120명 성도들에게 강하게 임재하신 것입니다. 33년 전에서 하나님 자신께서 말씀으로 성육신하셔서 이 세상을 심방하셨고, 부활 승천하신지 열흘 만에 이번에는 거룩하신 영으로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재림)까지 성신님께서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전인격적으로 함께 하셔서, 우리들에게 회개를 하게 하시며, 하나님께 예배를 회복하게 하시며, 깨끗하고 정결한 삶으로 인도하며, 위로하시며 병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성신님의 임재하심 모두 하나님의 피조세상을 심방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신님을 통하여 우리는 새롭게 되고, 힘을 얻고, 주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1960년대 70년대에 새벽기도회 때마다 많이 부른 찬송이 190장(통 177장)입니다.

1) 성신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후렴)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2) 성신이여 강림하시 크신 권능 주소서 원하오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하소서

3)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신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4)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 하소서 충만하게 하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다음 주일은 삼위일체 주일로 지킵니다. 성부, 성자, 성신은 한분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이를 성령(Holy Spirit)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성신을 성령이라고 통칭해 버리면 신관에 문제가 생깁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한국 교회는 아무런 설명 없이 성신(Holy Ghost)을 성령(Holy Spirit)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본래 성령은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 성신의 영을 지칭했는데 미국에서 자유신학 바람이 불어와 영성(靈性 Spirituality) 운동이 경건이나 부흥사경회나 대부흥이란 용어를 밀어내고 초대교회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영지주의(Gnosticism) 용어가 지금 현재 한국교회에 만연되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성”만 강조하면 ‘영은 거룩하고 구원의 대상이며, 육(肉性)은 썩어질 것이니 구원과 관계 없다’는 영지주의 냄새가 납니다. 구원파(권신찬, 유병언, 김요한, 박옥수)의 구원론이 영지주의와 관련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영, 혼, 육)을 말하지, 영성만 아닙니다. 경건(敬虔, pietas=piety)이란 용어는 전인적인 용어입니다(행 3:12, 10:7, 딤전 4:7-8). 장로회신학대학교나 한신대, 감신대의 교훈이 “학문과 경건”입니다. 이것이 전통신학 용어입니다. 용어 하나가 바뀌면 여러가지 혼선이 나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다시 성신의 충만함을 체험하고 무장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마태복음 22장)에 이어 오늘도 마태복음 23장을 통해 예수님의 변증법을 배우겠습니다.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시며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신앙인은 율법의 “의. 인, 신”을 실천하며 참된 경건을 회복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다 Eight Woes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마 23:1-36, 막 12:38-40; 눅 11:37-52; 20:45-47)

(1) 이에 예수께서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마6:1)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12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진리와 행위에 대해 논쟁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인기를 앗아간 예수님을 어떻게 하든 모함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별별 문제로 논쟁을 하던 차에 주님의 변증법이 이겼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다윗과 그리스도의 관한 질문을 던지시면서 오늘 23장에서 8가지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마태복음의 청중은 유대인들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윤리에 대해 지적하면서 예수님의 변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심할 것은 모든 바리새인들이 다 정죄 아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부류의 집단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바리새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것은 확실하나 모든 바리새인들은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여덟가지 지적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비록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겨냥하지만 또한 제자들에게도 하신 교훈이며 변증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파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들의 올바른 주장은 인정하십니다. 그들의 행실이 모두 바르지는 않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만은 존중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2, 3절). 그러나 율법의 세목들에 대한 까다로운 준행을 고집하거나, 어떤 특수한 교훈이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불합리하게 그 범위를 확대하거나, 사람들에 의한 율법자체들을 쓸데없이 만들어가는 것은 안내자가 아니라 압제자가 된다고 하십니다(4절). 이미 이들은 이러한 문제에 빠져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바리새인들이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차고 다니던 경문(=성구함, φυλακτήρια 퓌락테리아 “phylacteries”)은 길고 가느다란 양피지에 쉐마의 구절들을 써넣은 다음 그것을 가죽 상자들에 담아서 봉한 상자를 말합니다. 이 조그만 성구함들은 가죽끈으로 왼편 손목과 미간에 매어집니다(신6:4-9, 11:13-21을 보라). 또 옷술(the borders of the garments, 타 크라스페다 τὰ κράσπεδα)은 옷 가장자리에 단 술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 옷술을 크게 하여 율법의 주된 교훈을 상징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술이 달린 옷을 입으셨습니다(마9:20). 주께서 정죄하신 것은 옷술을 크게 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려고만 하는 처사였습니다.

8절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하십니다. 함부로 랍비나 선생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9절에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고 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직자를 ‘신부 Holy Father’이라고 부르는데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아버지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10절에서는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지도라 leader, leadership”이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제자도는 11-12절에 있는대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원리입니다. 섬기는 리더쉽(Servant Leadership)을 가르치십니다. 함부로 선생이나 랍비라 하지말고, 아버지라 하지 말고, 지도자라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① 첫 번째 화 있을진저 First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13절)

(13) 화 있을진저[슬프도다] 외식[위선]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3절. 화 있을진저(Woe 우아이 Οὐαι)는 슬픔의 탄성을 뜻하는 감탄사로 마태복음서 본 장에서만 모두 8번 나옵니다(13, 14, 15, 16, 23, 25, 27, 29절). 유대인 선교에 애착을 가진 마태가 8번 “화 있을진저”를 표현을 통하여 예수님의 변증법적 가르침을 모은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화"들은 저주라기 보다는 슬픔에 더 가까운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단순히 저주를 즐겨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슬픔에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 보다는 “슬프도다”가 더 나은 번역입니다. 이 단어는 눅6:24, 25, 10:13, 11:42, 43, 44, 46, 47, 52, 유1:11에도 나옵니다. “외식하는”(hypocrites, 휘포크리타이 ὑποκριταί)는 ‘연기하는 배우’에서 나온 단어로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들이란 말입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위선적인 행동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적함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절대 위선하지 말라고 변증적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그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들의 보이기 위한 경건생활 모습이 자기자신을 속이고, 이웃도 속입니다. 이런 이중 생활을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사무엘 사사가 이새의 집에 가서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장차 왕이 될 인재라 생각하고 기름을 부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 7)하십니다. 산상수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십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속이고 가면(persona, 이를 人格이라 번역함)쓰고 평생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고 천국갈 날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이런 거짓의 가면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나의 위선 때문에 나 자신은 물론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구원을 막아버리면 더 큰 처벌을 받게 됩니다.

② 두 번째 화 있을진저 Second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14절)

(1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막12:40과 눅20:47)

14절. 이 구절이 “없음”이라고 개역, 개정개역, 현대역에 되어 있으나 헬라어 다수사본(99.9%, 5780개 파피루스 사본 중 45개만 제외한 안디옥 사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938년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일본 총독부 중심으로 우리 나라 성경을 “개역”한 책에는 다수사본의 전통을 버리고 자유주의 사상에서 1901년에 개정한 American Standard Bible을 따라 “없음”이라 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빼면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책[생명나무가 아님]과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9)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우리나라 최초 성경번역인 구역(1911년판)에는 14절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과부들을 돌보고 도와주어야 하며 그들의 집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이를 삼키며, 시장이나 공개 장소에서 길게 기도함으로 자신들의 신앙이 깊다고 자랑하며 위선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더 큰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막12:38-40에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경고하십니다. 또 눅20:46-47에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③ 세 번째 화 있을진저 Third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15절)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5절. 세 번째 화 있을진저 말씀은 그들이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옥 자식”(the child of hell, 휘온 게엔네-스 υἱὸν γεέννης)는 문자적으로는 “게헨나의 자식”을 말하는데 이것은 유대인의 한 표현으로 “내생에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식”을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개종자들은 원래 바리새인들보다 더 바리새적인 열심[위선]을 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④ 네 번째 화 있을진저 Fourth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16-22절)

(16)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마15:9)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출30:29)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출29:37)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대하6:2, 시26:8, 시132:14)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16-22절. 네 번째 지적하신 사항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눈먼 인도자(ye blind guides)라는 것입니다.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솔로몬의 봉헌기도처럼 성전으로 맹세하면 되는데,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도록 잘못 가르칩니다. 또 고르반 제도를 지킨다고 부모에서 효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9) 이에 주님께서 17-19절에서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고 반문하시면서 (출30:29)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출29:37)”고 수사학적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에 대해 주님의 변증은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대하6:2, 시26:8, 시132:14),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고 명확하게 설명하십니다. 당시 금권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 형식주의로 타락한 믿음을 치유하시며 바른 교훈을 회복해 주십니다.

⑤ 다섯 번째 화 있을진저 Fifth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23-24절)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3-24절. 다섯 번째 변증은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아모스의 주제, 5:24], 인자를 사랑하며[호세아의 주제, 호 6:6],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사야의 주제, 30:15, 7:9]이 아니냐?”를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의(義, 정의 judgment), 인(仁, 긍휼 mercy), 신(信, 믿음faith)을 회복하는 것이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강조한 박하(mint)와 회향(anise)과 근채(cummin)도 동시에 드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구약시대 온전한 예배는 제물과 제단과 제사장과 여호와의 불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온전한 예배는 의와 박하(번식력과 생존력이 풍성한 향신료), 인과 회향(팔각 효능을 가진 향신료, 향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방지), 신과 근채(당근과, 양념재료, 대회향)가 짝을 이룹니다(키아즘구조). 영적인 맹인이 되면 하찭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패싱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⑥ 여섯 번째 화 있을진저 Sixth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25-26절)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눅11:39).

25절. 여섯 번째 변증은 속사람과 겉사람을 동시에 성결케 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 관리가 중요합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하십니다. 눅 11:39-41에 보니 “주님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하십니다. 만물을 항상 새롭게 하시는 주님(계 21:5)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후 5:17).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온갖 욕심, 탐욕, 음란, 악독을 예수님의 보혈로 항상 씻고 주님께서 항시 사용하실 그릇으로 준비를 합시다. 오늘 성신강림절인데 성신께서 임하시면 온갖 나쁜 것을 불로 태워주시고 물로 씻어주시고 피로 정결하게 하십니다. 찬송 184장에 보니 “불길 같은 주 성신”의 합토(만져주심)를 찬양합니다.

(1) 불길 같은 주 성신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 주소서

후렴: 성신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2) 주의 제단 불 위에 우리 몸과 영혼과 우리가진 모든 것 지금 바치옵니다

(3) 모든 것 다 바치고 비고 빈 내 마음에 성신 충만하도록 주여 채워주소서

(4) 구속하신 주께서 약속하신 성신을 믿고 간구하오니 지금 내려 주소서

⑦ 일곱 번째 화 있을진저 Seventh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27-28절)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7-28절. 일곱 번째 변증은 위선[외식]은 회칠한 무덤에 비유합니다. 겉으로는 흰 회칠을 하여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할 수 있음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회칠한 무덤(whited sepulchres, 타포이스 게코니아메노이스 τάφοις κεκονιαμένοις)는 손을 대면 부정해 진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여 무덤을 희게 칠한 것을 말합니다(행23:3). 그런데 그것을 주의하기 위한 색칠이 아니라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위장한 무덤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⑧ 여덟 번째 화 있을진저 Eighth Wo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29-36절)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대언자[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대언자[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대언자[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창15:16, 살전2:16).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대언자[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29-36절.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 변증은 바리새인들이 대언자[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대언자[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대언자[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선자들을 향하여 권면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대언자[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unto the blood of Zacharias son of Barachias).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역대하서가 맨 마지막 부분에 있기 때문에 구약의 마지막 대언자를 가리키는 것임(대하24:20-22).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는 최초의 순교자의 피와 최후의 순교자의 피까지 이 의로운 피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심 Lament over Jerusalem(마 23:37-39, 눅 13:34-35)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37-39절.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하십니다. 예루살렘 (᾿Ιερουσαλὴμ ירושׁלם)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터전, 평화의 소유”를 말합니다. 이슬람도 ‘평화의 기초를 놓다“는 뜻으로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탄식하신 ”예루살렘아“는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마2:3), 유대인들(행21:31), 천국의 상징적으로 새 예루살렘(계3:12)으로 말합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많은 대언자들, 제사장들, 하나님의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에로 초대를 하셨지만 이들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탄식하십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고 심판을 선언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할때까지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날만할 때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신강림절을 맞이하여 모세가 주님의 말씀을 받으로 호렙산 시내봉에 오르는 심정으로 말씀을 사모합시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주님 오실 때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인 성신강림을 받아 주님과 동행하십시다. 예수님의 여덟가지 변증을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신앙, 행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시다. 이 기쁜 소식을 온세상 전하세! 성신이 오셨네 성신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신이 오셨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약속하신 성신님을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신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항상 말씀을 사모하며 깨닫게 하시고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옵소서. 정결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열거해 보자(2-7절)

2. 함부로 선생, 지도자, 아비의 용어를 쓰지 말고 누구에게 사용해야 하나?(7-9절)

3. 제자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11-12절)

4. 화 있을진저 시리즈 8개를 정리해 보자(13-36절)

5. 없음 이라고 적힌 14절을 다시 읽어보자

6. 화 있을진저 시리즈와 제자도를 기억하여 실천하자

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탄식하신 이유는? (37-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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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가정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예배를 회복하여 가정과 나라와 교회를 살게 하소서!

(3) 주님처럼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환우들을 치유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5월20일 월 찬 185장(통 179)삼하 7 다윗과 다윗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21일 화 찬 184장(통 173) 삼하8 다윗의 백전백승

22일 수 찬 183장(통 172) 삼하9 다윗과 므비보셋(요나단의 아들)

23일 목 찬 182장(통 169)삼하10 다윗이 암몬과 전투하다

24일 금 찬 186장(통 176) 삼하11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다

25일 토 찬 187장(통 171) 삼하12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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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겟세마네TV & 로이교회의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참가 Zoom 회의

<2024학년도 겟세마네신학교 봄학기 & 송도 로이교회 새벽기도 및 각종 행사 ZOOM 주소>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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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2024년 봄학기 종강 (5월 27일 월, 오전 10:00~오후5:30)

2024년 5월 20일(월) 13주차

1교시(10:00-11:30) 창세기(박요한),

원우회(11:40-12:10)

2교시(1:10-2:40) A반 설교학(류재이),

B반 복음신학(송인성)

3교시(2:50-4:20) 은사신학(유석근),

4교시(4:30-5:20) A반 헬라어 특강(윤사무엘),

B반 성경변증법(오선화)

◉장소: 본교 채플실, 네이버에 “겟세마네신학교” 검색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연락처: 032-832-0691, 010-91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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